내 세 번째 컴퓨터 (펜티엄2 350)
세 번째 컴퓨터는 1999년 4월에 샀습니다.
이 컴퓨터를 사려고 키텔이라는 PC통신에 들어가서 매일 시세를 확인했습니다.
용산 선인상가에 있던 예하라는 가게에서 매일매일 시세를 올려줬거든요.
생각해 보면 이 사람들도 참 대단하다.
그 옛날 피씨 통신 시절에 매일 시세를 올리려면 얼마나 귀찮았을까?
어드민 페이지 같은 것도 없이 텍스트 파일로 상품 목록을 저장해 놓고 메모장으로 가격을 수정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모뎀으로 통신에 접속해서 새 글을 올렸을 테니…
하지만 남들이 귀찮아하는 일을 해야 다른 곳과 차이가 생기는 법.
저처럼 고마워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을 테고 분명 돈을 많이 벌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3달 동안이나 고민했습니다.
메인보드와 그래픽카드는 뭘로 할까?
모니터는 뭘로 살까?
CD롬은 티악이 좋을까 LG전자가 좋을까?
결국 샀습니다.
CPU는 펜티엄2 350MHz.
메인보드는 ABIT BH6, 그래픽카드는 ATI Rage 시리즈.
420MB 하드 디스크.
램은 잘 기억 안 나지만 아마 128MB.
그리고 모니터는 LG 플래트론 795FT.
17인치 평면 모니터였습니다.
당시 모니터는 다 볼록했는데, 거의 처음 나왔던 평면 모니터였습니다.
모니터 가격만 무려 70만 원.
컴퓨터 전체를 해도 160만 원 정도였는데 너무 무리했다.
지금 같으면 돈도 없는 고삐리 놈이 애플 5K 모니터를 산 격 아니었을까?
생각해 보니 제가 뭔가를 구입하면서 이렇게 신중히 오랫동안 알아본 건 이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것 같습니다.
주식이나 부동산을 살 때 이렇게 사야 하는데 말입니다.(웃음)
아마 이때부터 습관이 시작되었나 봅니다.
지금도 맘 편히 쉬고 싶을 때는 다나와를 켜서 새로운 것들이 뭐가 나왔나 살펴보곤 합니다.
사지도 않을 거면서.
이것들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게 저의 소소한 행복이랄까.
태어나서 가지고 싶어 죽겠다 생각했던 것은 컴퓨터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옷도 관심 없고 차도 관심 없고 집도 관심 없고…
요즘에는 컴퓨터마저도 관심에서 조금씩 멀어져 가는 것 같습니다.
간절히 원하는 뭔가가 계속 제 안에 남아있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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