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카카오에 면접 보러 가던 날.
역삼동의 작은 건물이었습니다.

면접관들은 아직 들어오기 전.
직원의 안내에 따라 회의실 같은 곳에 들어가 앉았는데 테이블이 김치찌개로 얼룩져 있었습니다.
누가 밥을 먹었나 보다.
안내해 주던 직원이 걸레를 가져오더니 우이씨 하면서 닦았습니다.
“우이씨 밥을 먹었으면 치워야지. 우이씨”

자리에 앉아서 걸레질하는 걸 지켜보며 웃음이 났습니다.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좋았습니다.

면접이 끝나고 나니 해가 져있었습니다.
건물 앞에서 담배를 피우며 사람들을 지켜봤습니다.

담배를 피우던 누군가가 밥 먹으러 나가는 사람에게 말합니다.
“어? (영어이름을 부르며). 그 Api 언제쯤 나와요~~ 곧 다 된다믄서요.”
“어어~ 밥 먹고 돌아와서. 이제 거의 다 됐어. 오늘까지 꼭 해볼께!”
화이팅을 하듯이 주먹을 불끈 쥐며 말했습니다.

보기가 좋았습니다.
‘그건 안돼요. 어려워요.’
이런 얘기를 너무 많이 들어서 그런가? 오늘까지 꼭 해볼께란 말을 얼마 만에 듣는지.
밝은 에너지가 좋았습니다.

면접에 합격한 뒤 카카오톡의 창시자는 저에게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 물어봤습니다.
저는 카톡 서버 개발을 하고 싶다 했고 그러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첫 출근을 하니 제 자리가 서버팀이 아니라 클라이언트 팀인 겁니다.
카톡 윈도 버전을 만들기 위해 모인 팀.

이건 무슨 상황이지?
어리둥절 한 채로 자리에 앉아 윈도용 카톡을 어떤 언어로 만들지 대화를 나눴습니다.
C++로 만들 것인가 C#으로 만들 것인가.
아직까지는 윈도 XP가 너무 많으니 C++로 해야 하지 않겠냐. 이런 대화들.

속으로 한숨을 쉬었습니다.
‘윈도 클라이언트 지겨워서 그만하고 싶은데.’
‘서버 개발하라더니 뭐야. 속았나? 뭐가 어떻게 돼가는 거지?’

클라이언트팀 사람들과 점심시간 가까이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저 쪽에서 사람들이 몰려옵니다.

“혹시 벤자민이세요?”
“네”
“아니 지금 여기서 뭐해요. 아침부터 기다려도 기다려도 안 오길래 회사 안 오기로 한줄 알았네잉.”

덩치가 산만한 친구가 제 자리에 놓인 아이맥을 번쩍 들어 서버팀 쪽 자리로 가져갔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키보드와 의자, 제 가방을 들고 저에게 빨리 따라오라 했습니다.
벙찐 표정의 클라이언트 사람들과는 그대로 헤어졌습니다.

도대체 이 얼간이 같은 회사는 뭐지?
일처리를 어떻게 하는 거지? 시스템이란 것도 없나?

카카오 버디
나의 버디는 나 자신

미숙한 일처리 덕분에 저는 신규 입사자에게 한 명씩 배정되는 버디도 없었습니다.
그래 어차피 누가 내 문제 풀어주지 않는다. 상관없어.

이상하게 제 기분은 나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좋았습니다.

네이버는 완성된 회사 같았습니다.
모든게 시스템으로 되어있었고 그 중 어떤 부분이 맘에 들지 않더라도 바꾸기는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맘에 들지 않는 채로 그냥 따르고 살 것인가. 내가 바꿀 수 있는 곳을 찾아갈 것인가.

완성되지 않은 회사.
체계가 잡혀있지 않은 회사.
내가 마음껏 놀 수 있는 회사.
저는 이런 것을 원했던 것 같습니다.

2012년 5월 2일. 10년 전 오늘.
첫 출근과 얼간이 같던 상황들.
기억이 이렇게 선명한데 10년이나 지났다니.

영광의 시대

따뜻한 봄날이 되면 카카오와 처음 사귀던 날들의 설레는 감정이 떠오릅니다.
제 경력 중에서는 바로 이때가 영광의 시대 아니었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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