앱스토어는 스티브잡스가 개발자들에게 주고간 선물
2006년, 첫 회사에 들어가서 윈도우용 프로그램들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프로그램을 사용자들에게 배포하는 것도 일이었습니다.
사용자들이 홈페이지에 와서 매번 새 버전을 다운로드받게 할 순 없으니 이를 편하게 해주기 위해 자동 업데이터를 만들었습니다.
프로그램이 처음 실행 될 때 새 버전이 나왔는지 검사해서 자동으로 업데이트 시켜주는 프로그램.
열심히 만들었고 잘 동작해서 참 기뻤습니다.
배포에 부담을 덜 가지게 되었습니다. 열심히 일했고 하루에 몇 번이나 배포한 적도 있습니다.
자주 배포하다보니 동갑내기였던 기획자에게 이런 소리를 듣기까지 했습니다.
“너무 자주 업데이트를 하면 사람들이 싫어해. 앱 실행시킬 때 다운로드 화면 뜨는 걸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거든.”
“어, 알았어(시무룩)”
(웃음)
여하튼 저는 제가 만든 이 자동 업데이트 프로그램을 참 좋아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세상이 변했습니다.
이제 더 이상 이런 자동 업데이트 프로그램을 만드는 사람은 없습니다.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앱스토어나 플레이스토어에 올리면 됩니다.
요즘 스토어에는 심지어 점진적으로 배포하는 기능까지 있습니다.
이 뿐인가요?
앱스토어는 앱 홍보까지 도와줍니다.
카카오톡이 처음 나왔을 때 빠르게 확산될 수 있었던 건 앱스토어에서 무료 앱 1위 자리를 놓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뭐 쓸만한 앱이 없나 하고 매일 같이 무료 앱 순위를 확인했고 카톡은 이 1위 자리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와츠앱은 당시 유료 탭 쪽에 있었는데 세계 1등이던 이 와츠앱이 무료 앱 쪽으로 들어오지는 않을까 카카오 창업자들은 노심초사 했습니다.
어떤 분이 언젠가 제게 이런 말을 해줬습니다.
“세상은 앱스토어가 나오기 전과 후로 나뉘는 것 같아. 이 때 부터 개발자들의 위상이 올라갔거든. 마치 스티브 잡스가 주고 간 선물 같아.”
생각해보면 정말 그랬습니다.
제가 자동 업데이트를 만들던 2000년 중반 시절, 개발자들은 하층민(?)이었습니다. ㅋㅋ
기획자가 열심히 파워포인트를 만들어서 디자이너에게 건네주면 디자이너는 시안을 만들어서 저에게 던져주고 퇴근합니다.
저는 의견을 내볼 생각도 못하고 받아서 매일 밤 늦게까지 열심히 프로그램을 짜곤 했습니다.
지금은 개발자를 대하는 태도가 많이 달라졌죠. 이거 만드는 게 가능하냐고 부탁을 합니다.
스타트업을 차려도 개발자를 구하는 게 1순위이고 2순위가 디자이너입니다. 기획자없이 시작하는 경우도 많아진 것 같네요.
카카오나 네이버처럼 개발자가 넘칠 것 같은 대기업도 회사 안에 들어가 보면 개발자가 없어서 울상입니다. 개발자의 몸값 또한 그만큼 치솟았습니다.
앱스토어가 생긴 뒤로 가장 좋은 점은 혼자서 창업을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앱스토어가 홍보와 배포, 결제 등 귀찮고 힘든 일들을 도와주면서 개발자는 필요한 일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자르와 하쿠나를 만든 하이퍼커넥트 같은 회사들은 앱스토어의 큰 수혜자입니다. 앱스토어가 없었으면 글로벌에 자신들의 앱을 배포는커녕 노출도 못했을 테니까요.
개발자의 세상은 2009년에 바뀌었는데 우둔한 저는 이걸 깨닫는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요즘 앱스토어와 플레이스토어의 30% 수수료 때문에 말이 많습니다.
저도 커피한잔으로 매 달 수수료를 내고 있지만, 자동 업데이트 프로그램을 만들던 시절을 생각하면 감사한 마음으로 내게 됩니다.
물론 개발사들이 압박을 해서 수수료가 5%라도 떨어진다면 이게 웬 떡이냐며 좋아하겠지만요. ㅋㅋ
며칠 전 아내와 함께 넷플릭스로 스타트업 드라마를 봤습니다. 아기가 잠을 자니 소리를 조용하게 틀어놓고 한글 자막을 켜고 봤는데요. 한국 드라마를 한글 자막으로 보면서 신선한 관점을 느꼈습니다.
이제 세상 모든 나라의 사람들이 다른 나라의 드라마를 편하게 보는구나. 귀찮게 자막 만들고 더빙하는 일을 넷플릭스가 다 해주네. 영업이나 유통, 홍보까지도 해주니 제작사는 콘텐츠만 집중해서 잘 만들면 되겠다. 콘텐츠 제작자들의 춘추전국 시대군.
어, 그런데 이거 마치 개발자와 앱스토어 이야기 같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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