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자가 되기로 선택한 후 커리어에 대해 걱정했었던 적이 있었던가?
가만 생각해 보니 있었습니다. 세 번 정도.

대학생 시절

도대체 내가 코딩으로 돈을 벌 수 있기는 한 걸까?
내 실력으로 회사에 들어갈 수 있는 건가? 대기업에 갈 수 있을까? 중소기업은?
밤늦게 홀로 보라매 공원 근처를 걸으면서 불이 켜져 있는 수많은 사무실 창문을 올려다보며 생각했습니다.

“그래, 회사가 이렇게 많은데 나 앉을 자리 하나 없을라구.”

기분이 엄청 울적했던 것 같습니다.
친구들은 토익 공부를 하러 다니고 취업 준비를 하느라 바쁘게 움직였는데, 그걸 바라보며 초조함을 느꼈습니다.

중소기업이었던 첫 회사를 그만두고 난 직후

중소기업이었던 첫 회사에서 5년 정도 보낸 후 대기업이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퇴사가 처음아라 다른 곳에 이력서도 넣어보지 않은 채 일단 그만뒀습니다.
그리고 대기업들에 이력서들을 냈는데…

아는 사람에게 추천을 받아 이력서를 쓴 것도 아니고, 홈페이지를 통해서 지원서를 썼습니다.
네이버, 다음, SK컴즈, NC소프트, 넥슨 같은 곳들.

하… 그런데 답장이 오질 않더군요.
5년 가까이 열심히 했고 자신감도 꽤 많이 생겼는데, 밖에서 보는 내 수준이 이런 거였구나.
겨우 한 달 정도 지났을 뿐인데 초조함이 엄청 커졌습니다.
나 혹시 새되는 거 아냐? 아무 데서도 연락 안 오는 거 아냐? 그럼 내 인생 어떻게 되는 거지?
젠장, 다른 회사를 먼저 알아보고 그만둘걸. 도대체 무슨 깡이었냐.

어머니도 말씀만 안 하셨을 뿐 걱정을 많이 하셨던 것 같습니다.
“쟤가 어쩌려고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저러나…”

Daum, 엔씨소프트, 넥슨 이런 곳에서는 연락도 안 왔었고,
시간이 지나 네이버에서 면접을 보자고 연락이 왔습니다.
이력서를 내고 한 달 정도 즈음 연락이 왔던 것 같은데…
지금 생각해 보면 네이버에서 제 이력서를 보고 픽해준 사람이 인생의 은인입니다.
만약 쓱 흘려 넘겨 버렸으면 나는 지금 뭘 하고 있을까? 시간이 지날수록 초조한 마음이 커져서 어떤 이상한 회사라도 들어갔을 겁니다.

네이버에서 카카오로

제 주 종목은 Windows 프로그래밍이었습니다.
네이버에서는 이전 회사에서 하던 일과 똑같은 일을 했습니다. 또다시 C++를 가지고 Windows 프로그래밍. 지겹다 지겨워.
Windows 프로그래밍은 거의 모든 분야를 다뤄봤지만 웹이나 리눅스 서버에서 경험을 쌓지 못하는 것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Web 2.0 시대를 지나 모바일의 시대가 시작되고 있었고 Windows는 계속 쪼그라들고 있는 상황.
이걸 계속하다 보면 10년 뒤에 나는 어떻게 되어 있을까?
C#으로라도 전환해야 하나? 그런데 C#도 영 전망이 좋지 않아 보이는걸.

같은 일을 계속하는 것이 지루하기도 했고 대기업 생활에 실망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카카오로 이직을 했습니다. 리눅스에서 Ruby로 카톡 서버를 만든다는 것이 맘에 들었습니다.

커리어 걱정의 끝

카카오에 가서 커리어 전환을 하면서 꽤 고생을 했지만…
극복해낸 이후로는 더 이상 커리어에 대해서 걱정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동안 익힌 실력이 네카라쿠배라는 1부 리그에서 통한다는 걸 알게 되니 걱정이 싹 사라지더군요.
이제 어디든 절 받아줄 곳이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던 것 같습니다.

네카라쿠배가 좋은 점이 있다면, 많은 사람들이 그에 대한 동경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막상 가보면 별다를 것도 없는데.
이 간판이 있으면 다른 회사로 이직하기 쉬운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불안했던 옛날 기억을 떠올려 보게 된 이유는 이제 컴퓨터학과 3학년이 된 조카와 대화하면서입니다.
저도 이 세상이 몇 년 뒤 어떻게 바뀔지 전혀 보이지 않는데, 지금 조카에게는 얼마나 불안할까 하고.
이 또한 다 지나갈 거라고 말해주고 싶지만 당사자에게는 아무런 위로가 되지 않겠죠.
꾸준히 한 걸음씩 걸어나가다 보면 결국 목적지에 도착할 텐데, 불안했던 어린 저에게 이런 말은 하나마나 한 소리였을 것 같습니다. 결국 스스로 겪어내고 이겨내는 수밖에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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