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자의 최신 버전 증후군
저에게는 병이 하나 있습니다.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가 있을 때 이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병입니다.
우분투의 새로운 릴리즈가 나오기 전에 베타 버전을 깔아서 쓰고는 했습니다.
정식 버전까지 도저히 기다릴 수가 없어서.
윈도우도 마찬가지, 맥도 마찬가지.
나이를 먹고 경험이 쌓이면서 이제 베타 버전은 쓰지 않게 되었습니다.
새 프로그램을 미리 써본다는 건 약간의 즐거움을 주긴 했지만 너무 많은 고통을 감수해야 했거든요.
그래도 안정 버전이 나오면 꼬박꼬박 업그레이드합니다.
사용자로서 쓰는 운영체제 업그레이드는 쉽습니다.
업그레이드하고 그냥 즐기면 되니까.
하지만 개발 프레임워크나 라이브러리 같은 경우는 어렵습니다.
업그레이드하는 과정에서 큰 고통이 유발되기 때문에.
예전에는 이를 너무 빠른 시점에 진행하다가 고통을 당한 일이 많았습니다.
이제는 주변의 생태계가 어느 정도 갖춰졌다 싶을 때 업그레이드를 시도합니다.
상황에 따라 조금씩 다르겠지만 대략 6개월 정도의 시간이면 충분하다 생각합니다.
이때까지도 못따라 오는 라이브러리나 플러그인이 있다면 버립니다.
앞으로도 계속 발목을 잡고 힘들 게 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이런 성향의 저를 싫어하는 개발자들도 많았습니다.
“아니 왜 그렇게 업그레이드를 못해서 안달이냐?”
“최신 버전이라고 다 좋은 게 아니야.”
정말일까?
훨씬 좋은 개발 도구와 라이브러리가 나왔는데 최신 버전이라는 이유로 쓰지 말고 기다려야 한다고?
대화를 더 나누다 보면 이런 이야기를 듣습니다.
“잘 돌아가는 코드를 왜 건드려서 일을 벌이냐.”
“그거 하다가 잘못되면 누가 책임을 지냐.”
이런 대화는 저를 피곤하게 했습니다.
누가 책임을 지긴 내가 책임지지.
다른 사람들이 힘들고 무서워서 못하겠다는 그 일, 내가 해준다는데 왜 못하게 하냐고.
저처럼 병적으로 업그레이드할 필요까지는 없다 생각합니다.
하지만 코드도 기계처럼 꾸준히 기름칠을 해주고 관리해주지 않으면 녹이 슬어 못쓰게 됩니다.
최신 버전이 다 좋은 게 아니라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더 이상 보안 패치도 되지 않을 정도로 녹슨 코드로 서비스를 운영하는 걸 많이 봤습니다.
“최신 버전이라고 다 좋은 게 아니야.”
그럴듯해 보이지만 솔직하지 않은 말입니다.
이제 이런 말 안 듣고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어서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