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축구할 때 공격을 하고 싶어 합니다.
제일 재밌으니까.
모든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니까.
골을 넣는 것만큼 짜릿한 게 없으니까.

카카오에 처음 입사했을 때 무슨 일을 하고 싶냐고 물어봐서 카톡 서버를 하겠다고 했습니다.
가장 핵심 서비스니까.
가장 중요한 일을 해서 내가 스포트라이트를 다 받아야지.

어려운 일 투성이라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렸습니다.
6개월 정도 잠 못 자고 고생한 후에야 맘이 좀 편안해졌던 기억이 납니다.
그제야 돌아볼 여유가 생겼습니다.

찾아오는 사람들이 항상 많았습니다.
어떤 날은 두세 팀이 동시에 찾아와서 줄 서서 기다리며 얘기하기도 했습니다.
핵심적인 팀에서 일하고 있는 건 분명했는데…
실제로 하고 있는 일은 짜친 일 투성이였습니다.

서버 교체하기.
어드민 만들기.
스팸 찾아내서 처리하기.
카톡 더보기에 배너 달아주기.
이런 Api 만들어 줄 수 있냐는 상담해 주기.
클라이언트의 버그 등으로 돌발 상황이 생겼을 때 어떻게든 서버에서 먼저 해결해주기.
그리고 끝이 없는 고객 문의와 장애 처리.

아, 이런 일하려고 지원한 게 아니었는데.
이래서 신기능 개발은 언제 해?
신규 기능을 만들기 보다 서비스를 지키기 위해 더 많은 힘을 쏟았습니다.
이거 공격수가 아니라 완전히 수비수잖아?

이렇게 몇 년 하다가 공격수를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나도 신규 서비스 만들고 싶다구!
그리고 카카오 플레이스를 만들었습니다.
대차게 말아 먹었습니다.
풀타임 출전, 0골.

수비가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이고 중요한지는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든든한 수비수들이 있어서 공격도 마음껏 할 수 있는 거라는걸.
공격수가 골을 못 넣어도 좋은 수비 덕분에 다음 경기를 계속 해나갈 수 있다는걸.

중요한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야 당연한 것이지만…
공격수가 가장 중요한 것이라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회사에서도 서비스를 만들어 나가는 사람들과 지켜 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레거시를 지켜내는 사람들은 좀처럼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합니다. 백업하는 존재로 인식될 뿐.
다행히도 최근에 김민재라는 국가대표 수비수를 보며 자란 아이들은 축구할 때 수비수를 하고 싶다는 말을 한답니다.
지켜내는 사람들이 지금보다 나은 대우를 받고 멋진 모습을 보여 주면 새로 들어온 사람들도 레거시를 다루는 일을 기꺼이 하려 하지 않을까?

다시 회사에 간다면 수비수를 하더라도 이제는 즐기며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가치 있고 중요한 일을 하는 거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잘 생각해 보면 이 일도 참 재밌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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