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저희 집에는 차가 없었습니다.
승용차를 타는 일이 거의 없었는데.. 가끔 누군가의 차를 얻어타면 그렇게 좋았습니다.
온 세상이 신기한 듯 창밖을 내다봤습니다.

운전면허는 24살 때 땄습니다.
군대에 다녀와서.
하지만 차를 사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주차할 곳도 없고… 무엇보다 살 돈도 없어.

그렇게 계속 나이를 먹어갔습니다.
20대 후반쯤 되니 운전을 못하는 사람이 주위에 점점 줄어갔습니다.
30대 중반이 되니 저밖에 안 남았던 것 같습니다.
다들 차는 없더라도 필요할 때 쏘카 정도는 타고 다녔습니다.
운전할 줄 모른다고 말하는 게 부끄러웠습니다.

이러다 평생 운전 못하는 거 아닐까?
왜 도전해 볼 생각을 안 하지?

35살 때.
카카오 다닐 때 옆자리에 일하던 친구가 본인 차로 운전 연수를 시켜줬습니다.
어떻게든 저를 운전할 수 있게 만들어주겠다고.
점심시간이 되면 H스퀘어 주차장에서 시작해서 판교역 동네를 한 바퀴 돌았습니다.
H스퀘어 지하 주차장을 처음 진입할 때 어찌나 무섭던지. ㅋㅋ
시속 한 5km 정도로 기어내려가는데 뒤에 따라오던 차가 계속 빵빵 거리기도 했습니다.

아무튼 이 친구와 이 주일 정도를 매일 연습하고 자신감이 조금 붙었습니다.
과감하게 서판교에도 다녀오곤 했습니다.

카카오의 또 다른 친구에게 100만 원에 중고차를 샀습니다.
2001년식 베르나.
완전 할아버지들 타는 차였고…
라디오를 틀면 안테나가 스르륵 올라오는 옛날 차였습니다. ㅋㅋ
이 차를 사려고 주차장이 있는 오피스텔로 이사까지 했으니 운전 공포증을 꼭 극복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베르나 주차
기둥 옆에 주차할 땐 옆 차를 배려해서 기둥에 붙여 주차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지금 보니 ‘내 차 비싼 차니깐 가까이 오지마’ 라고 말하는 것 같다. 😂

아내를 만나게 되면서 금방 차를 바꾸긴 했지만…
(아내가 그 차를 부끄러워한 것도 아닌데 내가 괜히 부끄러워서)
베르나를 계속 탔으면 좋지 않았을까 이후로도 종종 생각했습니다.(웃음)

운전하는 걸 여전히 즐기진 않지만…
이제는 좁은 골목길도 잘 다니고 주차도 잘 합니다.

뭐가 그렇게 무서웠을까?
좀 더 일찍 운전을 배웠다면 세상을 더 넓게, 더 빨리 알 수 있었을까?
어쩌면 그랬을지도요.

며칠전 운전하고 내리는 길에 보니 주행 거리가 50,000km 를 돌파해있었습니다.
기쁜 마음에 사진을 찍었습니다.
누적 주행거리 5만 킬로미터
무려 운전한지 9년만의 일

운전을 극복할 수 있게 도움을 준 친구 생각이 문득 났습니다.
평생 운전 한 번 안 해본 얼간이에게 자기 차를 선뜻 내준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저를 진심으로 생각해줬음이 틀림 없습니다.
정말 고맙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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