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번 훈련병
2009년 1월.
리만브라더스 사태가 터지고 난 직후의 추운 겨울.
새벽 3시.
저는 개발자 친구와 술을 마시고 있었습니다.
“야, 이게 정말 경제 위기 맞냐?
봐봐, 이렇게 술집이 가득 차서 다들 술 먹고 깔깔거리고 웃는데 나는 뭐가 망해간다는 건지 모르겠어.”
그럴 만도 했습니다.
월급 잘 나오지.
회사가 망할 것 같지도 않지.
혹시 망한다 해도 어디든 갈 곳이 있지.
개발자로 취업을 한 이후로 경제위기가 오건 말건 걱정을 하고 산 적이 없습니다.
그렇게 친구와 대화하던 중 문자가 한 통 왔습니다. 새벽 3시에.
“잘 지내니? 오랜만에 연락해서 이런 부탁을 해 정말 미안하다.
다음 달 월세 낼 돈이 없어. 30만 원만 빌려다오.
혹시 너도 힘들면 문자 그냥 지워버리고 답장 안 해도 돼. 정말 미안하다.”
아직도 대강의 문자 내용이 기억이 납니다.
머리를 퉁 맞은 것처럼 한참을 쳐다봤습니다.
훈련소에서 전우조였던 내 친구.
23번 훈련병.
겨우 6주 함께 지냈을 뿐이지만 같이 웃고 울었던 순간들이 얼마나 많은지.
자대 배치를 받아 헤어져 지내면서도 힘들 때마다 서로 통화하며 위로받았던 친구.
이 추운 겨울에 월세가 밀려서 쫓겨난다니.
그동안 어떻게 살고 있었던 거야.
얼마나 힘들었으면 나에게 까지 연락을 한걸까.
잠시 생각하다가 돈을 보내줬습니다.
전화 통화는 차마 못했습니다. 친구가 부끄러울까 봐.
나중에 괜찮아지면 연락하라고. 힘내라고.
아… 내가 힘들지 않다고 다른 사람들도 그런 건 아니구나.
이게 무슨 위기라고 호들갑인가 생각했던 게 부끄러웠습니다.
어쩌면 나는 그냥 운이 좋았던 거 아닐까?
개발자가 가장 잘 나가는 이 시기에 운 좋게 올라탄 것뿐이잖아.
친구의 연락은 다시 오지 않았습니다.
아직도 그 친구가 한 번씩 생각이 납니다.
특히 이렇게 경제 위기가 어쩌고 뉴스에서 떠들어대면.
SNS도 찾아 보곤 하지만 찾을 수가 없습니다.
살아는 있는 걸까? 너무 보고 싶다.
어느 날 갑자기 반갑게 연락이 오는 모습을 머리 속에 그려보곤 합니다.
정말 기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