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의 가계부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한 달에 얼마를 쓰는지 잘 모르고 있으며, 실제로 쓴 돈보다 더 적게 쓸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는 것을 봐왔다.
왜 이렇게 낙관적인 생각을 갖게 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 역시도 그랬었다.
우연한 기회에 별 생각없이 가계부나 써볼까 했었는데, 한 달 뒤 내가 실제로 쓰는 돈이 추정치와 꽤 많이 벗어난다는 것을 깨달아 가는 과정이(물론 내 예상보다 더 많이 돈을 쓰고 있어서) 고통스러웠던 기억이 난다.
이런 일이 어쩌면 일을 할 때도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은 자신이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평가해주는 것보다) 일을 잘하는 편이라고 낙관적으로 생각을 하는 것 같다.
평가시기에 돌아오는 피드백에 대한 반발, 연봉에 대한 불만 등은 어쩌면 이런 낙관적인 생각들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은 아닌지 모르겠다.
가계부를 쓰기로 결정한 이후로 가장 좋은 점은 내 상태를 내가 정확히 알게 되었다는 점이다.
2010년쯤에는 얼마를 벌었고 얼마를 썼는지, 그에 비해 지금은 한달에 얼마를 쓰고 있는지를 잘 파악하고 있다.(지출이 엄청나게 늘었다;;)
위에 가계부를 처음 썼을 때 고통스러웠다고 표현했는데, 그 고통이란 바로 이런 느낌이었다.
내가 상위 10% 정도에는 들 정도로 절약 정신이 투철하고 실제로도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뚜껑을 열어보니 전혀 아니었어.
‘일’ 에 대한 가계부를 쓴다고 하면 아마 이런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야근도 다른 사람들보다 많이 하고 회사에서 상위 10% 에는 들 정도로 많은 기여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까지 한 일들을 쭉 펼쳐보니 실제로는 그냥 평균밖에 못하는 사람이었어. 이런, 심지어는 야근도 별로 안했네.
어렴풋이 생각해보는 것과 사실은 다를 수 있다. 나는 이런 판단 착오가 위에서 말한 고통보다 더 무섭기 때문에 우선 내가 회사에서 하는 모든 일들을 가계부를 쓰듯이 구체적으로 기록해보기로 했다.
오늘은 어떤 코드를 짰고, 어떤 문제에 대해서 고민을 했고 이것은 어떤 방식으로 해결했는지.
고민만 하다가 결국 문제를 못풀고 포기한 것은 아닌지. 포기했으면 포기했다고 기록.
지각을 했으면 지각을 했다고 기록하고, 낮잠 잔 날은 낮잠 잔 것도 기록한다.
가계부를 쓸 때도 수입만 적고 지출을 빼놓을 수는 없듯이, 일을 할 때도 잘한 일과 못한 일을 다 기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과정이 내가 더 나아지게 도움을 주었는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적어도 내 상태가 어느 수준인지는 잘 알게 해준 것은 맞는 것 같다.
최근에는 매일 하는 일의 기록 외에도, 내가 1년에 통상 몇개 정도 커밋을 하는지, 몇 권의 책을 읽는지를 관심있게 관찰하고 기록하면서 그 숫자를 외우고 있으며, 이런 것들을 나 자신을 평가할 때 쓰는 요소 중 하나로 삼기도 한다.
이런 가계부의 요소들은 자신이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을 것 같다.
만약 일을 하면서 자신이 과소평가 받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면, 먼저 자신만의 가계부를 한번 만들어서 기록해보면 어떨까?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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