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압축 프로그램 시대가 있었으니…

제가 처음 만났던 압축 프로그램은 arj 라는 이름의 프로그램으로 기억합니다.
1990년대 초반쯤이었으려나.
MS-DOS에서 arj a arj x 명령으로 파일들을 압축하고 압축 풀면서 무슨 컴퓨터 전문가라도 된 듯 우쭐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당시 압축 프로그램은 용량을 줄이기 위해서도 많이 사용했지만 하나의 프로그램을 여러 장의 플로피디스크에 나눠 담기 위해서도 사용했습니다.
플로피디스크 한 장(약 1메가 바이트)에 게임을 다 담을 수가 없는 경우 플로피 디스크 사이즈에 맞춰 여러 파일로 분리해 담았던 것입니다.

친구에게 새로운 게임이 든 디스켓들을 빌려 집에 돌아와서 압축을 풀 때 에러가 날까봐 심장이 쿵쾅쿵쾅 했습니다.
진짜 에러가 난 적도 몇 번 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압축이 성공적으로 풀리고 게임이 잘 실행됐을 때 그 기쁨이 얼마나 컸던지…ㅎ

이후 봇물처럼 압축 프로그램이 쏟아졌습니다.

한국에서는 알집이라는 프로그램이 시장을 장악해서 꽤나 오랫동안 쓰였습니다.

알집, 빵집, 반디집, 다집.

너도나도 압축 프로그램을 만들고 서로의 것이 좋다고 홍보했습니다.
이름을 보니 직방, 다방이 생각나네요. ㅋㅋ

한 때 컴퓨터를 깔면 가장 먼저 설치하는 프로그램은 7zip 이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이마저도 설치하지 않게 되었네요.
압축 포맷이 zip 으로 천하통일되면서 더 이상 별도의 프로그램들이 필요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생각해보니 최근 5년간 압축을 해본 일이 10번이나 있으려나…
여러 파일을 묶어 이메일로 보낼 때,
혹은 exe, apk 포맷을 받아주지 않는 애플리케이션들을 속이기 위해 zip 으로 감싸는 용도로 정말 가끔 사용했던 것 같습니다.

요즘 우리가 사용하는 대부분의 파일들은 이미 압축되어 있습니다. 영화, 음악, 문서 등…

알집, 7zip 같은 압축 프로그램들은 이제 잘 쓰이지 않지만 압축 알고리즘과 컨테이너 포맷들은 계속 발전해 나가는 것 같습니다.

사용자가 직접 압축 프로그램을 사용하지 않는 대신 애플리케이션들이 압축 프로그램을 사용합니다.
이런 내부 과정이 감춰지면서 디스크, 네트워크 효율은 증가하고 사용자들은 더 편하게 컴퓨터를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압축 프로그램 전성시대에 그들이 홍보했던

  1. 압축률이 좋아요.
  2. 압축 속도가 빨라요.
  3. 모든 포맷을 압축 풀 수 있어요.

이런 말들이 이젠 어색하게 느껴집니다.

Everything chang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