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일입니다. 한 2009년쯤?

제가 다니던 회사는 드롭박스 비슷한 제품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이걸 다른 회사들에 설치해 주고 돈을 벌었습니다.

개발만 하던 저는 어느 날 영업팀장님과 함께 구매 의사가 있다는 회사에 직접 가보기로 했습니다.
이걸 만든 개발자를 데려오면 사겠다고 했다는 겁니다.

까짓 거 내가 가지 뭐. 어떤 소리를 하나 들어보자.

약간 기대도 되고 오랜만에 소풍 가는 기분도 들었습니다.
영업팀 사람들은 좋겠다. 서울 여기저기 차 타고 다니면서 많은 경험을 하잖아.

거래처 사람들을 만난 순간 저는 현실을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원숭이였습니다.
이 사람들은 영업팀장과 저를 앉혀놓고 원숭이 대하듯이 조롱을 했습니다.

“이건 왜 이렇게 만들었어요? ㅋㅋㅋㅋㅋ”
“이 부분 이거 고쳐줄 거예요? 고쳐주지 않으면 힘들어요.”
“아, 자기가 개발자예요? 오~~~ 이런 이런 거 만들 수 있겠어요?”

이 사람들의 말투는 피드백을 주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우리를 놀리려는 것이었습니다.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갑질하는 기분이 좋아서?
오늘 하루 얘네 데리고 놀면서 시간이나 때우자.
이런 느낌을 받았지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야지 하는 생각은 못했습니다.
그저 비굴하게 웃었습니다.

늦은 오후 사무실로 돌아왔습니다.
저는 평소처럼 자리에 앉아 다시 에디터를 켰고 영업팀장님은 이사님 앞에 서서 보고를 합니다.
사무실이 작으니 이사님 방도 따로 없고 무슨 대화를 하는지 다 들을 수 있었습니다.
영업팀장님은 이사님에게 엄청 깨지고 있었습니다. 그거 하나 제대로 못 팔고 오냐고 혼나는 모양입니다.
슬쩍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등이 땀으로 온통 젖은 와이셔츠를 입고 굽신굽신 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아, 우리가 만든 프로그램을 팔아먹기 위해 이런 일들을 하는 거구나.
어떻게든 팔아주려고 하는 마음이 고맙다.
QA에서 나오는 문제들을 사소하게 넘기려 했던 제 모습들이 떠오릅니다.
더 잘 만들어야겠다.

저는 아침에 출근하면 항상 담배를 먼저 피우고 커피 한잔과 함께 느긋하게 일을 시작하곤 했습니다.
에어컨 바람을 쐬며 편하게 일하는 환경은 당연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여름이 되면 온갖 수모를 들어가면서도 하하하 웃어넘기던 그 영업팀장님 생각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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